2008년 10월 13일
2008. 10. 04 : 'Thrill me' : 나의 판타지를 새기다
Thrill me
2008. 10. 04 18:00 충무아트홀
나 : 이창용
그 : 김무열

지독한 비극, 서로 이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니- 싶을 만큼 지독하게 어긋난 사랑. '누가 누구를 조종했는가'란 카피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이날의 공연. 아마도 원 쓰릴미는 이런 게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이날 '이창용-김무열 페어'의 막공에 대한 평이 엇갈리는 것이겠지. 그저 나는, 그 지독한 비극이 너무 아파서 내내 숨을 쉴 수 없었다. 내겐 그랬다. 이것이 '쓰릴미'임을 생각하면 9월 15일과 10월 1일의 공연들이 훨씬 그것다웠고 전체적인 수준 역시 그쪽이 더 나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날의 쓰릴미는, 비록 '감정 과잉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정말 그들이어서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공연'이었다고.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흘러가버린. 온전히 두 배우의 압도적인 감정에 의지한. 그러한, 비극적인 사랑이 담긴 쓰릴미.
두 사람의 막공이어서 더 그랬을까, 이미 why를 부를 때 부터네이슨의 눈가가 젖어 있다 싶었고, 그때 공연의 분위기가 짐작이 가긴 했다. 이어 리차드의 등장, 그리고 둘의 포옹. 그 애절함이라니. 원래도 '사랑'을 기본 테마로 가진 이 둘의 페어지만, 오늘의 감정선은 그 이상. 그 애절함은, 이미 처음부터 이창용이 연기하는 네이슨, 김무열이 연기하는 리차드가 아니라, 온전히 그들 자신. 극의 장면장면이 절실히 납득되는.
서로 사랑하는 둘이 있으나, 바라는 길이 어긋나 있다. 항상 네이슨이 원하고 그만이 희생하는 것 같지만, 사실 다들 이기적인 사랑을 할 뿐. 네이슨은 그의 방식으로, 리차드 역시 마찬가지. 둘 다 바보인 거다. 조금만 천천히 갔어도,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어도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리차드는 네이슨이 정말로 자신을 떠날까 봐 울며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거고, 네이슨은 '이런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고 담담히 말하는 리차드를 보며 그렇게 죽을 만큼 아파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겨우겨우 버티는 것 같던 네이슨이 life plus 99 years를 부르며 완전히 무너지던 순간, 나도 같이 무너졌다. 고개를 떨구고 허리까지 굽힌 채로 오열하는 그를 보며 나도 함께 울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아파하고, 미치도록 그리워하며 쉽지 않은 이날의 밤을 마쳤다. 네이슨도, 리차드도. 또 우리도.
지금 이 말들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꺼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일주일이 흐른 지금은 그날의 공연에 대해 '이렇게 아팠고, 이만큼 슬펐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순간에는 그 분위기에 내내 짓눌려서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공기가, 두 사람이 나를 압박했고, 집에 와서도 쉽게 잠을 잘 수 없었다. 피곤한 몸으로 대구를 향했던 다음 날, 경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도 나는 그들에게 묶여 있었다. 한동안 계속 그랬다. 이 정도로 무언가에 압도당한 기분, 참 오랜만이다. 그래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쓰릴미', 그 정점. 나의 판타지.
단 한 번 뿐이었던 김동호의 리차드는 정말로 매력적이었고, 진짜 쓰릴미의 리차드다웠다. 내게 좀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나는 오히려 이 배우의 손을 번쩍 들었으리라. 하지만 4일의 공연으로 인해, 나의 네이슨은 이창용이고, 리차드는 김무열이 되었다. 극에 대한 김동호의 해석이 더 마음에 듦에도, 나의 쓰릴미에선 김무열이 그의 자리에 있다. 그건 4일의 공연 때문이다. 그것이 진짜 쓰릴미가 아니었다고 해도, 두 사람이 보여준 모습은 그 자체로 완전했으므로.
기꺼이 마음에 품을 '나의 쓰릴미'가 생겼으므로, 이후에 '창동페어'에 대한 찬사에도 불구하고(물론 아쉬움은 남긴 하지만.) 보고 싶다는 욕심에 몸이 닳지도 않았고, 이번 시즌 막공에 대해서도 크게 미련이 남지 않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날의 공연은.
하고 싶은 말이 무척 많은 공연. 그래서 지금까지 감상을 쓰지 못하고 있었고. 하지만 더이상의 표현은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내가 느낀 그 기분들을 죽일 것만 같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진부하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멈추자. 어제를 기점으로 2008년의 쓰릴미도 끝이 났으니까.
세 번의 쓰릴미.
팽팽한 긴장감에 압도됐던 9월 15일,
네이슨과 리차드- 각각 너무나 무섭고 아팠던 10월 1일,
짙은 감정들로 나를 짓눌렀던 10월 4일.
세 번의 쓰릴미가 지난 한 달 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줬다. 고마웠습니다. 모두.
이젠, 이렇게 보내야지. 쉽게 놓진 못하겠지만, 천천히. 조금씩. 안녕, 안녕. 나의 쓰릴미.
# by | 2008/10/13 22:52 | Let me burn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