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9 10:35

7월-9월초 :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로키, 루시퍼, 빈디치' Show me money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7월 14일에 시작해서 9월까지 왔다. '레이디의 외출'과 '영맨의 산책'을 통해 다른 배우들도 봤으니, 한 번 더 정리한다. 이제 올드맨의 외도와 본페어 마무리, 그리고 4일의 추가공연이 남았다.


이석준, 김지현, 윤나무 (로키, 루시퍼, 빈디치 관람)
이석준, 정연, 윤나무('레이디의 외출'-로키 관람)
김종태, 정연, 윤나무('영맨의 산책'-루시퍼, 빈디치 관람)
김종태, 김지현, 윤나무('올드맨의 외도'-로키, 루시퍼, 빈디치 예정)


'카포네 트릴로지'의 매력은, 폐쇄된 공간에서 7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집중력 있게 펼쳐지는 연극이라는 것. 이 연극, 꽤나 폼을 잡는다. 극의 형식과 무대 디자인, 의상, 음악, 연출까지 겉멋이 되게 '잘' 들어간 작품. 새로 썼다는 게 맞을 지이선 작가의 각색과 세 배우가 만드는 연기는, 멋들어진 외형만큼 안 또한 잘 채운다. 

언제나 보고 나면 시원한 로키, 마음 한 켠이 슬픈 루시퍼, 처연한 빈디치. 신이 나게 본페어로 보다가 요새 크로스 회차에 접어들었는데, 그것도 또 매력적이다. 


로키
캐릭터들이 통통 뛰어다니는 로키. 나는 이중에서는 물론, 세 편을 통틀어서도 이 쇼의 주인공 롤라킨이 가장 좋다. 사기도 치고 거짓말도 하지만,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남는 그 유쾌한 치열함. 그 정신없는 환상을 끝내고 걸어나가면서 안녕~하고 웃는 롤라를 보는 게 즐겁다. 로키쇼의 위대한 주인공 미스 롤라킨!! 이 언니, 순애보도 있거든. (너무 얼굴만 보는 것 같긴 하지만;.) 니코의 품에서 숨쉴 때가 제일 편하다던 롤라. 그 사랑은 진심이었을 거다. 데이빗을 그렇게 팔아넘길 만큼. 하지만, 살아야지! 사랑도 살아서 하는 거잖아?! 그래서 니코를 떠나려던 이 여자. 결과적으론 혼자만 살아남았지만,  이 여자, 어디서든 잘 살 거다. 살아남는 자의 이야기. 로키. 

참, 번도 좋다. 여자의 가슴을 만지려는 욕망보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책임감이 더 확실한 룸서비스 청년. 물론, 일은 좀 더 배워야할 것 같지만. 이 번, 손도 어찌나 예쁜지. 니코도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다. 이거 마시니까 아프다며 롤라가 안 마셔서 다행이라고 말하던, 그 멍청하고 잘생긴 남자. 

롤라 역의 두 배우가 다른 분위기인데, 둘 다 좋다. 다른 두 편에 비하면 배우의 차이가 크게 없는 극이기도 하고. 롤라킨은 언제나 롤라킨이니까!  


루시퍼
잔잔하지만, 그만큼 강렬함을 주는 극. 주인공 ‘닉 니티’의 매력이 극 전체를 감싼다. 카포네가 비운 자리를 향한 마피아 조직 내부 경쟁자들의 암투. 가족, 평범한 행복. 바랄 수 없는 희망, 풍선. 대부분의 긴장감은 대화나 전화 통화로 표현된다. 전체 70분 중 50분 이상을 부드럽게 끌고 가지만, 저 창문 너머로 점점 가까워지는 폭풍의 구름. 일상처럼 반복되는 씬과 대사만으로도 점점 긴장감이 올라간다. 그런 매력이 있는 극.

루시퍼의 영맨, 마이클. 가족으로서 닉니티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과연 그가 카포네를 대신할 수 있나-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대화 도중 슬쩍 떠보는 능청과 날카로운 눈빛. 그러다가 또 닉니티가 직접적으로 나오면 겁을 내기도 하고. 단 세 번 나오지만, 그 세 번이 기다려지는 캐릭터. 

배우에 따른 극의 느낌이 좀 다르다. 더블 배우들의 색이 달라서 매력이 있는데, 이석준과 김종태 모두 근사하다. 이석준은, 연출의 말대로 멋을 아는 배우. 진짜 멋있다. 말린이 어릴 때 보고선 “난 저 아저씨랑 결혼해야지!”하고 다짐했을 것 같은 남자. 지현말린이 좀 수동적인 느낌이라, 이 커플의 주도권은 닉에게 있다. 대사톤의 강약이 세고, 후반부에 굉장히 무너지는 느낌. 
김종태는 좀 더 부드러운 닉니티. 대사톤도 이석준보다 더 나직하다. 화를 내는 것조차. 그래서 무섭다. 정연 말린은 ‘어리지만 나도 카포네 가의 여자야.’라는 뉘앙스가 확실하다. 한 번 봤지만, 이게 인상적이었다. 사랑스럽지만, 결코 닉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 이 커플의 주도권은 말린. 그래서 영맨의 외출로 본 이 두 사람의 루시퍼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빈디치
로키와는 반대로, 죽으려는 자의 이야기. 반쯤 썩은 동족의 몸을 물어 뜯으면서도, 그것이 아내의 끔찍한 희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애써 외면하고 그저 먹이를 먹는 것이라 스스로를 세뇌하는 멸종 직전의 공룡.

감정의 널뛰기가 굉장히 심한 극인데, 그래서 이 극의 영맨은 참 매력적이다. 갓 현장에 투입된 풋내기, 상사의 비리를 어느 정도 짐작하는 10년 차 형사, 그리고 현재. 거기에 나레이션을 가미한 연기, 긴장감을 주는 루시와의 미묘한 관계, 피터와 빈디치를 오가며 두스를 대하는 모습, 후반부에 폭발하는 복잡한 감정선.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선 참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보는 나도 아주 재미있다.

이 극에서도 루시와 두스는 배우에 따라 느낌이 꽤 다르다. 먼저 두스. 이석준이 등장부터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진다면, 김종태는 보기엔 아주 반듯한 경찰청장이다. 무도회에서도 되게 자상하고 바른 남자가 등장하는데, 서재로 옮기고부터 느껴지는 그 수상함.김지현은 여자로서의 매력을 맘껏 뽐내는 섹시한 루시. 그래서 초반부터 빈디치와 이성적 케미를 드러낸다. 정연의 루시는 훨씬 건조하고 중성적이다. 이 루시와 빈디치는 그저 복수의 공모자들. 그러다가 춤을 출 때, 아주 잠깐. 이건 온전히 내 느낌이지만, 춤출 때 윤나무의 손에 얹힌 정연의 손이 유난히 작은 거다. 그 순간, 내내 공모자들로 보였던 두 사람이 잠시 남자와 여자로 보였다. 그게 되게 묘했다. 

유독 좋아하는 씬은, 루시의 총구 앞에 선 빈디치. 처음 봤을 때부터 “용서해요, 레이디. 난 정말 진부한 이유를 찾았지.”라는 대사를 내뱉는 그 톤에 확- 꽂혔다. 이 순간의 표정, 목소리, 손동작까지도 다 마음에 든다. 진심인 듯 아닌 듯, 그 미묘하게 보이는 감정들. 빈디치와 루시의 수싸움. 뭐, 요즘의 윤나무라면 뭘 해도 재미있긴 하다만.ㅋㅋ

김종태, 정연에 대한 감상이 좀 더 많은 건 최근에 봤기 때문. 익숙하던 본페어가 아닌 크로스 페어였어서 낯설면서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물론 보면서 본페어를 왜 그렇게 짰는지 이해가 갔는데, 그거와 별개로 두 배우가 보여준 루시퍼/빈디치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다. 김종태 배우는 다시 보지만, 정연을 한 번만 보고 끝내는 게 아쉽네.


원래는 9월 27일에 막공이었으나, 특별 공연이 추가되는 바람에 10월 4일까지. 요새는 1+1 행사 같은 것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지인과 연극이나 뮤지컬 한 편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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